103세 '백지동명' 주역 별세
103세 '백지동명' 주역 별세
  • 박세희 수습기자
  • 승인 2013.07.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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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독립운동 투쟁 최순덕 여사 별세


22일 오전 10시경 광주학생독립운동 백지동맹 사건의 주역이었던 최순덕 여사가 향년 103세로 별세했다.

 

▲ 22일 오전 10시경 광주학생독립운동 백지동맹 사건의 주역이었던 최순덕 여사가 향년 103세로 별세했다.

1911년 광주에서 출생한 최 여사는 1929년 전남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의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11월 3일 광주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일시위에 참가했다.

최 여사는 나주 통학열차에서의 일본 학생들과이 시비가 도화선이 되어 발발한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인 11월 3일 광주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가전이 벌어지자 동료들과 함께 시내로 나가 치마폭에 돌을 나르며 남학생들의 시위대에 전달하는 등 반일시위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시위에서 많은 학생이 구소되자 이에 반발해 전교생이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동맹' 사건을 주도했다.  모교 기말고사를 하루 앞둔 11월 9일 구속 학생 석방과 독립을 위해 아무것도 쓰지 말고 운동장으로 나가자는 내용의 호소문 150장을 작성해 학생들에게 배포했다.

시험당일 날이 밝자 마자 학교에 미리 가 삐라를 책상 안 서럽에 넣은 방식으로 이날 있을 거사를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했다. 이어 1교시 시험이 시작되자 각급교실 연달을 일일이 돌며 투쟁을 호소했고, 전교생 모두가 답안지 제출을 거부하며 운동장으로 나가 1주일간 항의 농성을 벌였다.

학교 측은 같은달 17일 최여사와 가담자 46명을 무기정학 처분했으며 다음해 1월 30일 최여사를 강제 퇴학처분했다.

무기정학 처분 받은 뒤 백지동맹 사건은 광주의 다른 고등학교들과 전국으로 확대되며 많은 주동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당시 유교 사상이 지배한 사회에서 소녀들이 일제에 맞서 벌일 수 있었던 최대의 투쟁이었다. 또한 광주에서 발발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최 여사는 뒤늦게 공로를 인정 받아 1954년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았다.

최 여사의 가족들은 해방 후 몇 차례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으나 주동자 인정이 안되고 경찰 조사 대상자가 아니었다는 이유 등으로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는 않았다.

유족은 이재웅 前 전남 완도경찰서장과 광주시 부교육감을 지낸 이재민 순천향대학교 교수, 이재균(이재균 치과 원장)씨 등 6남 1녀가 있다.

발인은 24일 오전 9시, 빈소 광주한국병원(쌍촌동) 장례식장 1호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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